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아픔’이라는 단어를 꽤 개인적인 것으로만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몸이 아픈 건 생활습관이나 운, 마음이 아픈 건 성격이나 의지의 문제처럼 정리해버리면 깔끔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승섭 작가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고 나서, 그 “깔끔함”이 사실은 현실을 흐리는 방식일 수 있다는 걸 더 선명하게 느꼈다.
이 책은 아픔을 감성적으로 위로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쉽게 지나치는 질문을 정면으로 꺼낸다. 왜 어떤 사람들은 더 자주, 더 오래 아플 수밖에 없는가? 그리고 그 차이를 우리는 왜 개인의 탓으로 돌리려 하는가?
1) ‘개인의 문제’라는 말이 갖는 폭력성
사회에서 아픈 사람을 대하는 가장 익숙한 언어는 “관리해야지”, “마음가짐이 중요해”, “운동하면 괜찮아져” 같은 말이다. 물론 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는 핵심은, 그 말들이 너무 쉽게 “정답”처럼 작동할 때 생기는 문제다.
아픔 앞에서 개인을 강조하는 순간, 아픔의 책임이 개인에게 붙는다. 그러면 사회는 편해진다. 회사는 노동환경을 점검하지 않아도 되고, 제도는 사각지대를 그대로 둬도 되고, 주변은 “걔가 약해서 그래”라는 한 문장으로 상황을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아픈 사람은 그 순간부터 아픈 데다가 죄책감까지 떠안게 된다. 몸이 망가진 것도 힘든데, 망가진 이유까지 “내가 잘못 살았기 때문”이라고 낙인찍히는 셈이다.
나는 이 대목이 가장 무서웠다. 아픈 사람을 돕는 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픔을 개인의 무능으로 환원시키는 언어가 우리 일상에 너무 많다는 것. “너만 힘든 거 아니야”라는 말도 때때로는 위로가 아니라, 아픔의 표현을 차단하는 장치가 된다. 이 책을 읽고 나서부터는 누군가의 아픔을 들을 때, 조언을 먼저 꺼내기보다 “그 상황 자체가 너무 가혹했겠다”라는 말을 먼저 떠올리게 됐다.
2) 아픔은 ‘사회적 조건’ 위에서 발생한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아픔을 사회적 조건 속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같은 병이라도 누구에게는 빠르게 지나가는 사건이고, 누구에게는 삶의 방향을 바꾸는 재난이 된다. 그 차이는 의지의 크기라기보다, 노동환경·소득·돌봄·주거·안전망 같은 조건에서 만들어진다.
특히 노동과 건강의 연결을 생각하면, “개인이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는 말이 얼마나 공허할 수 있는지 보인다. 야근이 일상인 사람에게 수면을 관리하라고 말하는 건 너무 쉽다. 하지만 “왜 그렇게 일해야만 하는지”, “그 일을 거부할 수 없는 구조가 무엇인지”를 보지 않으면 결국 개인만 남는다. 노동이 건강을 침식시키는 방식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누적될수록 몸과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단순히 피곤한 정도가 아니라, 무기력·불안·우울 같은 형태로 일상 전체를 잠식해버릴 수도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우울을 바라보는 시선도 정리됐다. 우울은 흔히 “마음이 약해서” 혹은 “생각을 바꾸면” 해결될 것처럼 말해지곤 한다. 그런데 어떤 우울은 개인의 내면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조건이 사람을 몰아붙일 때, 그 사람의 마음은 결국 반응한다. 감정은 개인이 만들어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개인이 놓인 현실에 대한 신호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아픔을 개인의 결함으로 보지 말자”는 말에 그치지 않고, 아픔이 생기는 조건 자체를 더 정교하게 보게 만든다.
3) “버티면 된다”는 말 대신, 바꿔야 할 것들
이 책을 덮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문장은 “버티면 된다”가 아니라 “무엇을 바꿔야 하지?”였다. 우리는 아픔 앞에서 개인에게 ‘회복’과 ‘성장’의 서사를 요구하는 데 익숙하다. 힘든 일을 겪었으면 그걸 ‘이겨내서’ 더 강해져야 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모든 아픔이 성장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성장으로 연결시키는 순간, 사회는 또다시 책임을 회피한다.
이 책이 나에게 준 변화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방향감각이다.
- 누군가 아프다고 말할 때, “왜 그렇게 됐어?”보다 “그 상황 자체가 너무 가혹했겠다”를 먼저 떠올리기
- 개인의 노력만 강조하는 이야기(자기관리, 멘탈관리)를 소비할 때, 그 말이 가리는 구조는 없는지 한 번 더 보기
- 회사나 사회가 “정상”이라고 포장하는 것들(과로, 경쟁, 불안정 고용)이 건강을 어떻게 갉아먹는지 의식하기
결국 아픔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면,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누군가의 고통을 ‘설명’하려 들기보다, 그 고통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조건을 함께 보는 것. 그게 최소한의 존중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4)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힐링 에세이”를 기대하면 결이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대신 현실을 더 정확히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매우 강하게 남는다.
- 직장인: “내가 약한가?”라는 질문을 자주 하는 사람에게, 그 질문이 생기는 구조를 같이 보게 해준다.
- 청년/취준생: 불안정한 조건이 마음과 몸에 남기는 흔적을 개인 탓으로 돌리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준다.
- 돌봄·서비스·감정노동을 하는 사람: ‘버티는 능력’이 아니라 ‘버티게 만드는 환경’이 문제일 수 있음을 확인하게 해준다.
- 누군가를 위로해야 하는 입장(가족·친구·동료): 조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나는 이 책을 “아픈 사람을 위한 책”이라고만 부르고 싶지 않다. 오히려 아픔을 쉽게 판단해버리는 우리 모두를 위한 책에 가깝다. 아픔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 것, 그리고 그 조건을 바꾸기 위한 언어를 배우는 것. 그게 내가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독후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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